‌글, 그림 김현민
스튜디오일공일 소장/공동대표


이 글은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 312호(2014.04)에 개재되었던 글의 원고입니다. 잡지에 개재된 글과는 일부 내용이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1. 

사실 기고를 마음먹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조경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설계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기획의도와 조금 더 먼저 이 길을 가고 있는 선배로서 조경을 시작하는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음에도 맘이 내키지 않는다. 학교를 벗어나 업으로서 조경을 시작한지 이제 고작 10년 남짓이다.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여전히 헤매고 있는 풋내기 조경가로서 지면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부끄럽고 무모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2. 

“왜 요새 블로그[1]에 글 안올리세요? 예전엔 종종 들어갔었는데.” 오랜만에 방치해 두었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한 동안 꽤나 정성들여 올리던 글들도, 자료들도 언제부터인가 뜸해져 버렸다. “요샌 바빠서. 정신이 없네.” 사실 바쁜 일상에 쫓겨서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그저 조심스러워졌다. 아직 여물지 않은 생각들을, 여전히 진행 중인 실험들을 글로 적는다는 것이 스스로 무책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입사원 면접을 할 때마다 좋아하는 조경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한다. 지원자의 설계적 성향을 파악해 보기 위함인데, 언젠가 한 친구가 ‘OOO이라는 우리 학교 선배요. 그 선배만큼 열정적인 사람을 본적이 없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 때는 ‘이 친구는 아는 조경가도 한 사람 없나?’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을 지나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태도’를 이야기 한 것이었다. 유명 작가의 작품집을 통해 볼 수 있는 멋진 디자인이나 깊은 철학보다도, 가까이서 직접 보고 느낀 친한 선배의 ‘열정‘이 더 큰 힘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지금 조경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우리들 자신에게도 더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열정’은 언제나 과정을 의미하며, 태도를 지배한다.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애쓰고 있는지가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용기를 내 본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들은 나의 조경에 대한 태도, 아직은 어설픈 과정의 이야기들이다.

[1] '인터페이스 랜드스케이프www.cyworld.com/interface_landscape'라는 200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개인블로그다. 조경설계에 관심 있는 동료와 후배들에게 나의 고민들과 자료들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나의 조경 스승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조경공방 아뜰리에 나무'의 이수학소장님의 열정을 쫓아 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3. 
‘형, 형이 하는 설계는 잘 모르겠어요. 다이어그램도 이해가 잘 안 되고요. 꼭 그렇게 어렵게 조경해야 되나요?’ 몇 해 전이다. 한 후배 녀석이 우리 회사에서 제출한 현상설계 도판을 보았는지 술자리에서 묻는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현상설계 작업들은 잘 된 설계안이 아닐뿐더러, 그것을 이해하기에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다이어그램은 복잡하고, 디자인은 매우 거칠고 개념적이며,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충분치 않으니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운 좋게 여러 작업들이 당선은 되었지만, 대상지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과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명쾌하게 제시해야하는 현상설계의 결과물로서는 사실 낙제다.

[그림1,2,3,4] North Corridor Plan, Bangalore, India_2005의 Site Potential Map, Landscape Units 다이어그램 Upenn의 디자인스튜디오 중 아누라다 마더Anuradha Mathur 교수의 수업 때 진행했던 대상지 읽기/쓰기 다이어그램이다. 대규모 대상지의 경관요소를 분류하고 단순화시켜 경관의 구조, 물리성, 기능성, 프로그램, 입지성 등을 고려한 설계 가용지와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동일한 과정이 ‘파주운정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현상설계_2007’에 적용되어 대상지 경관에 순응하는 디자인 전략의 매개가 되었다.


4.
㈜기술사사무소 렛의 장종수 소장님과의 개인적 인연으로 시작하게 된 현상설계 작업들[2]은 나로서는 참 행운이었다. ‘우린 목표가 2등이야. 그냥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자고.’ 진심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당선이 목표가 아니시라니 맘은 편하다. 사실 당시 진행되어 왔었던 많은 국내 현상설계 작품들을 보면서 항상 아쉽다고 느끼는 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그 동안 내가 배우고, 공부해 온 해외의 많은 현상공모가 그러해 왔듯, 현상설계는 작품을 통해 설계자만의 디자인 사고와 새로운 설계 기법, 여러 가지 도시적, 사회적, 철학적, 때론 정치적 담론까지도 공론화할 수 있는 설계안 이상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시절 지겹게 보아왔던, 라빌레뜨공원이나 다운스뷰파크, 프레쉬킬스 뿐만 아니라 근대적 공원의 시작이자 최초의 공원 현상설계격인 센트럴파크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잘 뽑아진 결과물로서의 공간적, 경관적 형태와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것은 좋은 설계design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좋은 현상설계안competition design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2] 이번호에서 소개되는 현상설계 작업들은 SWA Los Angeles 재직 당시 ㈜기술사사무소 렛과 개인자격으로 협업하였거나, 이후 ㈜기술사사무소 렛의 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작업한 것이다. 그 중 「파주 운정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디자인 현상공모(나군)_2007」, 「강북생태공원 현상설계_2008」, 「충북 진천․음성 혁신도시 조경 설계공모 A구역_2008」는 당시 SWA 동료였던 서울시립대학교 김영민 교수와 함께 공동 작업하였다. ‌

[그림5] North Corridor Plan, Bangalore, India_2005의 인터체인지 경관분석 다이어그램. 대상지로의 입구에 해당하는 인터체인지는 대상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로서 활용이 가능하다. 조망의 한계인 능선 내부의 경관을 기존 도로를 따라 10도마다 지형 단면을 끊고, 그 단면선을 기준으로 저수지들의 평면 위치를 표시하고, 도로로부터의 천개天開의 정도를 표시하였다. 이 다이어그램을 통해 인터체인지를 따라 연속적으로 변화되는 조망영역의 변화, 조망되는 저수지의 숫자와 조망면적, 가시성의 변화 등 연속적인 변화 경관 및 각 조망지점의 평가를 시도하였다. 


5.
또 다른 한 가지는 대상지site를 대하는 설계자의 태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대지와 설계안의 괴리감이다. 흔히들 우리가 설계하여할 대상지는 백지가 아니라고 쉽게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설계는 직접적인 설계 대상인 대지, 그 장소에 담긴 경관landscape이라는 실체substance를 ‘탐구’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 외부와의 물리적, 비물리적 관계성/맥락성context을 통해 그 땅의 개념적 의미를 ‘해석’하고 ‘부여’하려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하다. 게다가 하이브리드hybrid라는 시대적 흐름은 개념이나 이론, 디자인 철학이나 방법론까지도 조경이 아닌 외부로부터 차용되어야 더 ‘쿨‘한 것으로 몰아간다. 경관이라는 실체에 대한 탐구와 내부로부터의 고민 없이 밖으로의 팽창만을 꿈꾸는 조경은 걱정스럽다. 우리가 의무감처럼 행해왔던 많은 분석 리스트 중에 순수하게 조경만의 언어로 대상지 들여다보는 분석방법은 몇 가지나 있는가? 그것만으로 우리만의 디자인을 이끌어 내기에 여전히 충분한가? 그리고 그것들은 디자인으로 잘 발전되어 왔나? 

‌[그림6,7,8] 하남미사 보금자리지구 현상설계의 개념 다이어그램. 대상지의 표면과 상관없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논 지형을 대상지만의 경관적 메타구조로 이해하고, 이를 새롭게 조성될 공원의 물리적, 경관적 기반 시스템infrastructure으로 구조화, 가시화시킴으로써 이용자들에게 본래의 대지가 담고 있었던 의미-지역적 경관을 전달하고 하였다. 다이어그램은 시간에 따른 논의 분포를 중첩하여 논 지형 자체가 오랜 기간 대상지의 경관을 지배하여 온 역사적 유산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림9] 하남미사 보금자리지구 현상설계의 우수체계 다이어그램. 기존의 농지 구조를 적용한 습지 체인wetland chain-연속된 보존농지와 생태건천bioswale의 체인 구조를 통해 기존의 농지형 생태계의 복원을 유도하여 전체적인 지역 경관의 회복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6.
 매번 현상설계 작업 때마다 고민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우리가 항상 다루어야하는 땅에 관한 이야기, ‘그 장소만의 경관 체계landscape system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 나갈 것인가’와 해석된 경관 정체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들어오는 이종異種의 조직 속에서 작동 가능한 새로운 경관, 즉 변이적 경관landscape cultivar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파주운정지구 도시기반 현상설계_2007에서는 대상지의 경관을 형성해 온 기작과 새롭게 형성되는 도시의 기작을 중첩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 대지에 순응하며 도시 조직의 일부로서 작동하는 경관을 제안하고자 하였고, 강북 생태문화공원 현상설계_2008에서는 대상지 내부의 자연조직과 도시조직이 만나는 추이대 형성 과정을 통해 대상지의 경관을 조직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체계인 메타스케이프metascape를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충북혁신도시 도시기반 현상설계_2008에서는 대상지에 존재하는 일상적 경관 중 가장 마이크로한 경관요소들을 찾아 이들의 재조합을 통해 경관중합체landscape polymer라는 대상지만의 경관이 내재된 변이적 경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고, 하남미사지구 도시기반 현상설계_2009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대상지의 경관을 지배해온 농지의 미세 지형과 시스템, 조각숲의 구조와 기능을 새로운 공원의 기반적 시스템infrastructural system으로 적용해 보고자 하였다. 내곡 보금자리지구 조경현상설계_2010에서는 지형구조가 도시의 공간감과 스케일, 생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서울의 팽창 과정을 되짚어 봄으로써 알아보고자 하였고, 송산그린시티 철새서식지 현상설계_2011에서는 대상지를 여러 유형의 비오톱biotope 조합체로 인식하고, 대체서식처로서의 작동을 위한 필수적인 비오톱을 선정하고 이들의 이식grafting과 복제cloning, 재조합re-organization을 통한 단계적 서식처의 복원을 제안하였다. 

[그림10] 송산그린시티 철새서식지 현상공모_2011는 시화호 남측의 위치한 철새서식지에 신도시가 예정됨에 따라 요구되는 대체서식지를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그 동안 진행해 온 현상설계들처럼 대상지 경관landscape의 분석을 통한 개념 설정과 전략 제시에 중점을 둔 리서치형 프로젝트research project라고 할 수 있다. 약 2개월간의 현상설계 기간 중 한 달 이상을 자료 수집과 조사, 분석에 할애할 정도로 고생스런, 그렇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은 프로젝트였다. 


7.
물론 지금까지 해온 나의 작업들이 깊이 있는 논쟁을 끌어낼 만한 것들이 못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경관을 바라보는 일관된 가치관’을 가지고 설계에 접근하려고 애써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불완전한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내어 놓는 사람들이, 설계자의 가치관들을 각자의 설계 언어로 꾸준히 발전시키려는 노력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고 바란다. 또 그러한 노력들이 현장에서 설계 작업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가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설계가들은 매일 매일 생각하고,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거친다. 조경이라는 실용적 학문에 있어서 이러한 피드백의 과정은 더 할 수 없는 가치이며, 설계자 개개인이 자기만의 경관을 더 많이 이야기할수록 우리나라 조경의 스펙트럼spectrum을 더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림11] 주변 서식지 비교 다이어그램
서해안에는 전역이 철새들의 서식지라고 해도 과연이 아닐 정도로 많은 조류서식지가 분포되어있다. 대상지인 시화호갯벌의 특성과 어떤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시화호 갯벌을 포함한 인접 서식지인 인천만 갯벌과 남양만 갯벌의 지난 10년간의 조류 센서스 자료를 정리했다. 그 결과 인접 갯벌에 비해 2배 이상의 다양한 조류가 시화호 갯벌을 찾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이유가 서식 환경의 다양성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 중요한 점은 주요 섭식지인 갯벌과 기수역지역 이외에 만조 시 철새들이 휴식지로 사용하는 배후 서식환경이 넓고 다양하게 분포되어 보다 안정적인 서식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이 조사는 계획의 개념과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목표종 및 깃대종 설정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조류종의 유입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현재 시화호를 찾는 조류종의 수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대상지의 기능을 섭식처보다는 배후서식지로서의 휴식처와 산란처 역할에 중점을 두도록 계획하였다.



8.
경관landscape은 하나의 장소가 작동하기 위한 공감각적 시스템synesthetic system이다. 사실 경관은 마치 수백만 개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이 작은 톱니바퀴들처럼 그 곳만의 조직으로 오랫동안 서로 맞물러 작동하며 만들어진 커다란 아날로그시계analogue watch와도 같다. 경관은 시간을 거슬러 하나의 장소가 작동되어 오던 그 장소만의 역사적, 사회적, 생태적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담아낸다. 씨앗이 토양과 소통하며 뿌리를 내리고 환경-비, 바람, 기온, 습도 등에 반응하며 그 장소만의 식생을 이루는 것처럼, 인간이 대지와 소통하며 경작을 하고 길을 내고 공간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관은 그 속에 담겨있는 요소들 모두가 서로 반응하며 지금껏 만들어온 ‘장소와 요소, 요소와 요소들 간의 소통’에 의한 결과물인 것이다. 또한 경관은 이러한 장소의 시스템으로부터 파생된 2차적 무형의 산물, 즉 공간에 대한 감흥impression을 담는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때의 분위기나 느낌이 전해지지 않아 아쉬워했던 경험처럼, 경관은 한 장소의 소리, 향기, 촉감, 공간감, 문화, 역사 그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장소만 고유의 공기를 담는 공감각의 매체synesthetic media이다. 

[그림12, 13] 서식지 유닛
대상지를 찾는 다양한 조류들의 섭식지, 휴식지, 번식지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다양한 문헌 조사를 실시했다. 많은 문헌들이 동물학적 성상 위주로 기술되었을 뿐 서식지 환경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아 자료 수집 자체에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조사를 통해 대상지에 서식하는 조류들의 서식지 환경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16가지의 기본 환경 유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메타경관metascape처럼 대부분의 서식환경은 이 16가지의 비오톱 조합으로 구성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최소단위의 환경 유형을 서식지 유닛habitat Unit이라고 정의하였다. 각 유닛의 성격은 식생, 섭식물, 기능 , 소재, 염도, 깊이의 6가지 세부 특성에 의해 정리되었고, 이 육각형의 셀의 유닛은 단위 서식지의 결합뿐만 아니라, 게임보드모형game board model을 이용한 전체 서식지의 디자인 스터디를 통해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키key가 되었으며, 유닛별 조성기간과 시점의 결정이 쉽게 구분되어 단계적 개발계획phasing plan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림14(위),15(아래)] 서식지 변화 예측
대상지의 서식환경은 10년 뒤인 2020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시화조력발전소가 가동됨에 따라 시화호는 완전한 기수호로 성격이 변화되고, 하루에 두번 조수간만이 일어나게 된다. 주변의 배후지 역시 공룡알화석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지역의 도시화가 계획되어 있다. 3개의 거점을 가진 저수지 중심의 서식지는 긴 선형의 갯벌밴드 중심의 단순한 서식지로 변화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사라진 배후서식지이다. 만조시 갯벌이 물에 잠기면 철새들이 갈 곳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어진 두개의 대상지는 담수호와 염습지 성격의 배후서식지가 되어야한다. 



9.
변이적 경관landscape Cultivar. 우리가 설계를 해야 하는 대상지site는 오랜 시간 땅과 소통하며 그 장소만의 공감각적 경관을 담고 있는 물리적 바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이 땅을 이용하게 될 새로운 이용자들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여야 할 시간적 매체temporal media이기도 하다. 이때 대상지의 표면surface은 단순히 경관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실제하는 지형적 베이스topographic base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지의 역사, 문화, 생태계를 포함하는 이 땅의 ‘과거의 기억’을 유일하게 담아내며 현재와 관계를 맺어주는 오래된 사진앨범과 같다. 우리들 스스로 항상 되뇌는 말처럼, ‘조경’이라는 작업이 단순히 대지를 ‘화장’하는 일이 아니기 위해서는 우리의 설계가 단순히 미학적 가치를 넘어 이 땅의 경관이 가지고 있는 내재된 경관, 그 기억memory을 들어내고, 그것이 이 땅에 들어올 새로운 조직과 유연히 작동할 수 있도록, 두 조직 간의 상충contradiction을 경관적으로 중재arbitration하는 작업이 되어야함을 이야기한다. 변이적 경관이란 ‘변이’라는 말 자체가 담고 있는 것처럼 ‘본질’, 이 땅의 ‘경관적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대지의 기억이 말끔히 지워진 새로운 ‘B'라는 제3의 경관이 아니라 ’조건과 입장이 다른 여러 켜들이 얽혀서 생성적 배역을 해내가는 조경의 역할[3]‘, 즉 'A-1'의 경관인 것이다. 



[3] 정욱주(2006), “상충의 도시, 생성의 층위” 『LAnD:조경,미학,디자인』 도서출판 조경 

[그림18,19] 서식지 이식
8종의 대표종을 선정하고 서식지 유닛habitat unit의 조합을 통해 서식지를 이식한다. 문헌조사를 통해 해당 조류서식지의 일반적인 구조-섭식지, 휴식지, 번식지를 포함한 서식구조를 파악하고, 시화호의 기존 서식지 내에서 구조가 가장 흡사한 지점을 찾아 간섭거리를 반경으로 서식지 유닛을 조합하여 완성된 서식지를 복제하여 대상지 내부로 이식한다. 새로운 서식지는 기존 서식처 경관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경관적 컬티바cultivar 이다. 게임보드game board 모형 스터디를 통해 각 서식처간의 조합에 의한 전체적인 배치를 검토하였다. 


10. 
접촉면 경관interface landscape. 벌써 10년전이다. 나의 블로그 타이틀이기도 한 이 용어는 대학원에서 건축가 MVRDV의 책을 읽다가 우연히 내 가슴에 박혀 버렸다. 
 
“세계는 세계와 우리의 접촉면의 관계 안에서 변화한다. 세계의 한계는 우리 접촉면의 한계이다. 우리는 세계의 실체와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의 접촉면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Peter Weibel Architecture as Interface, MVRDV(1998), 『MVRDV at VPRO, MVRDV』 Actar. 재인용   


‘접촉면interface’. 그들이 꺼내 놓은 이 단어는 내가 그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의문들에 대한 해법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왜 대상지의 경관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사실 ‘접촉면’이라는 우리말보다 ‘인터페이스’라는 외래어가 더 익숙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핸드폰, 인터넷, 각종 프로그램, 게임 등 우리는 하루에 수 십 가지의 인터페이스를 만난다. 우리가 매일 쓰는 포토샵의 바탕화면은 버전 업이 될 때마다, 새롭게 바뀐 디자인에 놀라워하기도 하지만, 바뀐 아이콘 위치에 곧 당황스러워 하기도 한다. 인터넷의 포털사이트portal site 역시 어떤 사이트의 홈home 화면은 잘 정리되어 쉽고 정확하게 그날의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 어떤 곳은 쓸데없거나 잘못된 기사들을 제공해 오히려 시간만 허비시키거나 사건에 대한 오해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조경 설계라는 작업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 프로그램 또는 웹을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할 때, 사용자는 ‘인터페이스 화면’이라는 유일한 매개면 만을 통해서만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능과 정보와 소통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상지’ 역시 이용자가 한 장소에 담긴 다양한 경관적 정보들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적 매개면environmental agency이며, 설계자가 어떠한 경관적 잠재력을 읽어내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땅에 대한 의미와 이용자들의 이해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하고 있는 ‘조경’이라는 작업은 대상지와 이용자 사이의 역사, 문화, 생태, 그리고 공감각적 감흥을 포괄하는 접촉면 경관interface landscape을 형성하는 작업이며, 그것을 통해 이 땅의 가치를 이해하고, 경관과 소통하고, 장소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의미 깊은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림21,22] 파주운정지구 도시기반시설 조경현상설계의 개념 및 전략 다이어그램
대상지의 표면surface은 대지의 역사, 문화, 생태 등 이 땅의 소중한 기억을 담고 있는 유일한 경관적 매체이다. 경관landscape은 수많은 경관요소들이 마치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 듯 경관 요소들 간의 긴밀한 소통과 작용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며, 이는 대지, 즉 아날로그 표면analogue surface을 통해 발현된다. 반면 대지가 새로운 도시라는 조직 속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존 대지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아닌, 기능적으로 필요한 단속적 매체가 요구되며 이를 우리는 디지탈 접속기digital plug-in라고 생각했다. 아날로그 표면을 바탕으로 한, 두 조직의 결합을 통해 대지에 순응하며 새로운 도시 조직 속에서 작동하는 컬티바 경관landscape cultivar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11.
 ‘또 대상지?’ 사실 진부한 것은 대상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만의 눈으로, 보다 창의적으로 대상지를 깊게 들여다보고, 각자가 읽은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밖으로 부터의 언어들과는 차별되는 우리만의 디자인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어 지고, 의미있어 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1 - 태도; 접촉면 경관
text_김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