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S 강의노트] 2013
설계에 있어서 디자인 매체로서 다이어그램의 활용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어 왔습니다. 조경 설계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다이어그램은 조사 및 분석, 개념과 계획안의 설명 등 설계의 전 과정에 걸쳐 설계자의 생각을 전달하는 표현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전통적인 디자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Survey-분석Analysis-설계Design의 선형적(순차적) 디자인 과정에 대한 물음들이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의 다이어그램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나타나게 됩니다. OMA, MVRDV, UN STUDIO 등 으로 대표되는 '다이어그램 건축'의 출현으로 설계적 매체로서의 다이어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조경분야에서도 다운스뷰파크, 프레쉬킬스 등 대형 국제 현상 설계와 제임스 코너, 아누 마더 등의 저서를 통해 매핑, 꼴라쥬 등 새로운 형태의 다이어그램들이 소개되고, 개념 및 디자인의 발전 과정에서의 역할과 활용이 연구되면서 전통적인 디자인 기법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식되게 되죠. 그리고 이러한 다이어그램을 '생성적 다이어그램'이라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과거의 조사Survey-분석Analysis-디자인Design의 선형적 프로세스는 조사와 분석 단계에서 객관성과 과학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직관(주관)의 영역을 디자인 단계만으로 분리시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생성적 다이어그램은 '객관과 주관의 통합', 또한 '개인적 언어로 통합적 정보를 디자인'하고자 하는 특성을 나타냄으로써, 다이어그램을 전통적인 표현 도구로서의 분석적/환원적/재현적 기능을 넘어서는 선형적 디자인 과정이 통합된 비선형적 디자인 도구이자, 대상지의 정보를 디자인으로 보다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디자인을 위한 생성적 도구, 즉 디자인 매체design media로 인식하게 된 것이죠.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 배정한 교수님의 논문인 "현대 조경설계의 전략적 매체로서 다이어그램에 관한 연구"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이 슬라이드는 디자인 도구로서의 다이어그램의 활용과 사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이어그램에 대한 많은 논란들처럼 그것이 분석적이냐, 생성적이냐는 구분을 짓기 위함도 아니고, 무엇이 좋고 그르다의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죠. 단지 다이어그램이 디자인이라고 총칭할 수 있는 대상지 읽기-쓰기, 즉 분석-설계 도구로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보다 생성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입니다.
저는 수업을 통해 가급적 모든 것-대상지의 정보, 대상지의 조직 체계, 설계자의 생각까지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해 볼 것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다이어그램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대상지를 보다 면밀히 관찰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환원적-단순화의 과정을 통해 보다 명확한 대상지의 이해와 정제된 분석을 돕고, '추상 기계'로서 불명확한 사고와 논리를 보다 쉽게 체계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러한 과정들은 취사 선택된 정보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에 의한 시각적 의미 부여 과정을 통해 디자인되어짐으로써 조사-분석-설계라는 전통적인 선형적 설계 과정의 한계라고 지적되던 이성과 직관의 분절화를 없애고, 추상적인 정보들이 설계자만의 새로운 관점으로 체계화되고 실체적인 공간으로 보다 쉽게 발전될 수 있도록 매개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 슬라이드를 통해 분석적 다이어그램과 생성적 다이어그램의 차이를 알아보고, 생성적 다이어그램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여러분의 대상지를 바라보는 관점과 설계가 보다 풍부해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text_김현민
분석적 다이어그램 Vs. 생성적 다이어그램
ⓒ김현민/HYUN-MIN KIM
분석적 다이어그램
분석적 다이어그램은 쉽게 타자를 위한 다이어그램으로, 정보를 설명하기 위한 해설적 다이어그램입니다. 대상지의 정보 또는 설계안의 내용 등을 알기 쉽게 표현하는 전통적인 다이어그램들을 말하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버블다이어그램처럼 선택된 정보들이 원이나 네모, 화살표 등 단순화되어 환원적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 환원적 다이어그램이라고도 말합니다. 명확한 의미 전달이 목적이므로 개인적인 관점(대상지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분석)을 '사실적인 정보의 통제 및 객관화'라는 재현적 방식을 통해 일반적으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림1] 이안맥하그의 대상지 식생 다이어그램. 선택된 정보만을 분류/재현한 분석적 다이어그램으로 정보를 단순화하고, 기호화하는 환원적 성격을 띈다. 이러한 다이어그램도 흔히 맵핑(Mapping)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맵핑은 정보의 2차적 조직화 과정을 거친 개인화된 지도로, 단순히 대상지 정보를 지도형식으로 표현하는 것과는 구분지어 생각하고 싶다.
[그림2-3] 2D/3D 기능다이어그램. 기능다이어그램은 일반적으로 대상지나 계획안이 담고 있는 기능을 주제별로 분리하여 보여줄 때 사용된다. 복합적인 정보를 통제하여 분리시킴으로써 보다 쉽고 빠르게 내용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림4] 분석적 다이어그램을 활용한 개념다이어그램. 추상적인 이미지 또는 버블이나 화살표 등의 환원적 표현이 아닌 실제 공간을 통한 개념의 전달은 상호적 관계성, 스케일, 공간감 등을 동시에 전달하며 오히려 복합적인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생성적 다이어그램
생성적 다이어그램은 자아를 위한 다이어그램으로, 객관적인 정보들을 본인의 느낌이나 직관과 같은 개인적인 정보들과 재조합하거나,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로 재생산한 주관적 다이어그램입니다. 보다 쉽게 이야기하면, '설계자가 대상지를 이해하는 사고체계가 디자인과정을 거쳐 표현된 것'. 일종의 설계자 만의 개인적인 디자인 노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생성적 다이어그램이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개인화된 정보 및 표현'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나만의 글씨체로 써 놓았으니, 구체적 설명이 없다면 남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생성적 디자인 매체로서의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획일화된 분석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고, 그로인한 다양한 정보의 해석은 곧 개성있는 디자인의 직접적인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선형적 설계과정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사와 분석을 강조하며 조경을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화시키는데는 공헌하였지만, 역설적으로 디자인 분야로서의 조경이 가진 본질 중 하나인 설계자의 주관성과 직관성을 오히려 하위적 위계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공공 디자인으로서의 조경은 합리적 객관성과 작가적 주관성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태생적으로 함께 가지고 있으며, 이는 객관과 주관, 과학적 분석과 직관이 항상 동등한 위계로서 공존하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생성적 다이어그램은 이러한 상반된 두 개의 눈을 통한 동시적인 대상지의 읽기/쓰기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존의 정형화된 분석의 틀을 넘어 '설계자 본인의 눈'으로 보다 다양하고 유연하게 대상지를 읽고 쓰고자하는 개인화된 분석적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생성적 매체(매개체)로서 이해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성적 디자인 매체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은 대상지가 가진 다양한 정보들의 관계성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설계를 하게 되는 대상지는 빨간색 이점쇄선으로 둘러 쳐진 단순한 물리적 피사체가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대상지는 물리적 요소들뿐만 아니라 공간감, 경관성, 분위기, 향기, 질감 등 다양한 공감각적 정보들로 채워진 다차원적 공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지의 잠재력 역시 정량적인 조사/분석뿐만 아니라 정성적인 내용들까지 포함되어야 하며, 더욱 중요한 점은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요소들 간의 복합적인 관계성을 파악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생성적 다이어그램들에서 이러한 복합적인 정보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그 관계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이어그램에서 보여지는 특성인 다양한 매체의 활용, 중첩적 배치, 개인적 용어의 사용 등 자유롭고, 때로는 난해하기까지 한 표현방식들은 생성적 다이어그램이 분석적 다이어그램과는 달리 정보의 명확한 전달을 근본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생성적 다이어그램을 자아를 위한 다이어그램, 설계자 만의 개인적인 디자인 노트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유입니다.
생성적 다이어그램의 사례들